지난 글에서 저는 이 연재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고르는 과정"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첫 번째 실제 사례를 적습니다.
계기는 낭만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AI 도구값이 어느새 제 일의 고정비가 됐거든요. 한 번 쓰고 마는 지출이 아니라,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항목이 된 겁니다. 지금 제 메인 도구는 Claude Code입니다. 당분간 이걸 바꿀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대비가 필요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나갈 비용이라면, "만약 이걸 못 쓰게 되거나 값이 확 오르면 나는 갈아탈 수 있는가"를 한 번은 확인해두고 싶었어요.
그러니 이건 갈아타려는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갈아탈 수 있는 상태인지를 점검한 것이었습니다.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실제로 짐을 싸는 것과,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미리 봐두는 것의 차이니까요.
먼저 알게 된 건 제가 매일 쓰는 것들의 정체였습니다. Claude Code, Antigravity, Codex. 저는 이것들을 서로 다른 'AI'라고 뭉뚱그려 불렀는데, 뜯어보니 셋 다 '하네스'라는 같은 부류였습니다. 모델은 사실 텍스트만 뱉습니다. 그 텍스트를 받아 파일을 읽고 쓰고, 명령어를 돌리고, 결과를 다시 모델에게 물려주고, 대화가 길어지면 잘라내는 그 전체 살림을 맡는 껍데기가 하네스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 도구는 성격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의 상당 부분이, 알고 보면 모델이 아니라 이 껍데기의 몫이었던 거죠. 그리고 껍데기는 서로 대체가 됩니다. 안에 든 모델도 갈아끼울 수 있고요. 여기까지는 "갈아탈 수 있나"라는 질문에 절반쯤 그렇다는 답이었습니다.
값도 들여다봤습니다. 재미있는 건, 똑같은 오픈 모델인데도 어디에 얹어서 파느냐에 따라 값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찾아본 2026년 7월 23일 기준으로, 그 모델을 만든 회사가 직접 파는 값과 다른 업체가 얹어 파는 값이 네 배 가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오픈 모델이라서 싸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어요. 싼 게 아니라, 어디에 얹느냐가 값을 가르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 차이가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값이 여러 갈래로 갈린다는 건 곧 파는 데가 여럿이라는 뜻이고, 파는 데가 여럿이라는 건 갈아탈 곳이 있다는 증거니까요. 반대로 지금 제가 쓰는 Claude는 오픈 웨이트가 아니라서, 같은 모델을 여러 곳이 나눠 팔며 값으로 경쟁하는 구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대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상구가 하나쯤은 열려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물론 다 열려 있진 않았습니다. 점검을 하다 보니 진짜 잠금장치는 제가 예상한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껍데기를 복제하고 모델을 갈아끼워도 끝내 복제되지 않는 층이 하나 남더군요. 이 얘기는 한 편에 담기엔 너무 커서 다음 글들에서 따로 풀려고 합니다. 지금은 "가장 단단한 잠금은 우리가 흔히 지목하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정도만 적어두겠습니다.
한쪽 길은 아예 닫혀 있기도 했습니다. "오픈 모델이면 그냥 내 컴퓨터에 올려서 쓰면 되잖아"라는 흔한 얘기 말입니다. 제 작업용 맥미니는 램이 8기가입니다. 쓸 만한 오픈 모델을 로컬에서 돌리기엔 턱없이 모자랍니다. 제 맥미니는 사실 계산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여러 에이전트에게 일을 시키고 결과를 받아 정리하는 지휘소에 가깝습니다. 실제 계산은 전부 남의 GPU에서 일어나고 있죠. 그러니 "오픈 웨이트니까 자가 호스팅으로 독립하면 된다"는 탈출로는, 적어도 제 환경에서는 이론일 뿐 실제로는 닫힌 문이었습니다. 남는 선택지는 결국 전부 "누군가의 클라우드에서 도는 오픈 모델"이었고요.
그래서 결론은, 안 갈아탑니다. 지금 제게는 Claude Code가 여전히 가장 맞습니다. 이 점검의 결과가 "역시 이게 최고"라는 확인이었다면 좀 허무했을 텐데, 그렇진 않았습니다. 저는 갈아탈 수 있는 상태인지를 물었고, 부분적으로는 길이 있다는 것과, 어디는 막혀 있는지와, 진짜 잠금이 어디 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대체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은 지금 쓰는 것을 떠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머무는 것과, 몰라서 묶여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상태니까요.
다 하려 들지 않되, 나갈 문 하나는 확인해두는 것. 마음의 대비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짐은 아직 안 쌌지만, 비상구가 어디인지는 이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