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AI로 이런저런 걸 만들어 세상에 내보냅니다. 글에 얹을 이미지도 만들고, 작은 앱도 만들고, 제 대신 일하는 에이전트들이 뱉어내는 결과물도 매일 받아봅니다. 그렇게 한동안 AI가 만든 것들을 손에 쥐고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묘한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AI로 만든 것에는 티가 난다는 것이었어요.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이미지였습니다. 글에 얹을 커버 그림 같은 걸 만들 때 저는 보통 한 장만 받지 않고, 여러 장을 뽑아 그중에서 고릅니다. 그렇게 대여섯 장을 화면에 늘어놓고 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져요. 각각은 그럴듯한데, 다들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같은 손이 그린 것처럼요. Claude가 만드는 그림에는 특유의 톤이 있어서, 한 장만 보면 모르다가도 여러 장을 나란히 두면 대번에 "아, 다 같은 데서 나왔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뽑아준 이미지를 좀처럼 그대로는 못 씁니다. 색을 바꾸거나 구도를 손보거나, 뭐라도 하나는 제 손을 대야 그 균일한 티가 옅어지거든요.
글에서도 비슷한 걸 느낍니다. AI가 쓴 문장에는 특유의 리듬과 버릇이 있어서, 이제는 웬만하면 알아봅니다. 매끄럽게 잘 정돈돼 있는데 어딘가 사람 냄새가 옅은, 그런 결이요. 이모지도 그렇습니다. AI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문장 끝마다 반짝이는 걸 뿌려놓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 몇 개는 귀엽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 반짝이가 오히려 "여기서부터 AI가 손댔습니다" 하고 알리는 깃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장 미묘하고, 또 가장 정직한 티는 따로 있었습니다. 분량과 속도예요. 사람이 만든 것에는 어딘가 울퉁불퉁한 데가 있고, 어느 대목에서는 슬며시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AI가 만든 건 갑자기 매끈하게 많아지고, 부자연스러울 만큼 빨리 완성됩니다. 어제까지 없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흠 하나 없는 모양으로 나타나면, 바로 그 흠 없음이 출처를 일러줍니다. 너무 완벽해서 티가 나는 겁니다.
이런 걸 하나둘 알아채면서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게 된 거예요. 이미지든 앱이든, 밖으로 내기 전에 한 번 훑으면서 그 티를 걷어냅니다. 이 그림에 그 균일한 톤이 남아 있지는 않나, 이 결과물에 필요도 없는 반짝이가 뿌려져 있지는 않나 하고요. 에이전트가 알아서 정리해 올린 결과물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그럴싸하게 잘 정돈돼 있을수록, 그 매끈함이 조금 미심쩍어서 한 번 더 손으로 짚어보게 됩니다.
처음엔 이걸 그냥 "티 안 나게 다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티를 걷어내려면 결과물을 아주 가까이서, 구석구석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다보는 순간이야말로, 사실은 제가 그 결과물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AI가 만들어 건네줄 때 저는 그걸 대충 훑고 받아 든 것뿐이었거든요. 걷어낼 티가 더는 눈에 안 띌 때까지 봤다면, 그건 티가 사라졌다는 뜻이기 전에 제가 그것을 끝까지 검토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티 걷어내기는 숨기기가 아니라, 검토의 다른 이름이었어요.
지난 글에서 저는 무엇을 믿을지는 결국 내가 정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을지 정하려면, 먼저 그것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대충 받아 든 걸 믿을지 말지는 정할 수 없으니까요. 티를 걷어내던 제 손은, 알고 보니 바로 그 "제대로 보는" 일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도구가 결과물은 대신 만들어줄 수 있어도, 그걸 제가 처음으로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