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을 좀 알면 갈등이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줄어드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줄어드는 쪽은 오해에서 온 갈등이고, 남는 쪽은 다른 종류입니다. 서로 아는 게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달라서 생기는 쪽이요.
회의에서 "개발도 모르면서"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지식이 모자라 밀렸다고 느끼기 쉬운데, 돌이켜 보면 대개 그 자리의 문제는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무엇을 먼저 하느냐를 두고 답이 갈렸고, 서로 근거를 다 내놓았는데도 안 좁혀졌고, 그러다 나온 말입니다. 지식은 그때 손에 잡힌 무기였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이 한쪽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편에서는 일정이 그렇게 잡힌 게 누구 때문이냐는 말이 나옵니다. 형태는 달라도 하는 일은 같습니다. 안 좁혀지는 자리에서 상대의 자격을 걸어 이야기를 끝내려는 거요. 그러면 그 자리는 정말로 끝납니다.
갈리는 자리는 대체로 둘입니다. 하나는 무엇을 우선하느냐입니다. 기획하는 쪽은 고객이 지금 원하는 걸 채워 매출로 잇는 게 먼저고, 개발하는 쪽은 적정한 기술로 오래 버티는 제품을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가야 한다는 관점과 안정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은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간을 보는 방식입니다. 한쪽은 언제 나가느냐를 보고, 다른 쪽은 나가서 버티느냐를 봅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발표하던 날, 개발팀은 소프트웨어와 터치스크린 문제로 무대 위에서 에러가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 무대에 선 사람에게선 그런 기색이 없었고요. 둘 다 그 제품을 위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보고 있던 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양쪽 걱정이 다 진짜입니다. 사람도 시간도 없다는 이유로 기술 부채를 계속 미루면 어느 순간 손댈 수 없는 코드가 남고, 핵심 인력 몇이 바뀌면 그대로 멈춥니다. 반대로 시장 반응에 못 따라가면 제품이 좋아도 자리가 사라집니다. 어느 쪽도 기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건 설득해서 이길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걸지 정하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감수하는 위험이 늦는 쪽인지 부실한 쪽인지를 정하고, 그걸 정했다는 걸 서로 아는 것. 이번엔 날짜를 지키는 대신 다음 두 스프린트를 구조 손보는 데 쓰기로 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게 안 되어 있으면 각자 자기가 막으려던 위험을 상대가 가볍게 여긴다고 느낍니다. 그 느낌이 쌓이면 다음 회의는 논의가 아니라 방어가 됩니다.
제가 그나마 효과를 본 건 기획서 리뷰 전에 몇 시간이라도 먼저 보여주는 정도였습니다. 회의에서 처음 보면 판정이 되고, 미리 보면 같이 만든 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안 좁혀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회의가 끝나고도 한참 자리에 앉아 있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물었어야 했을까요.